잡담
우크라이나 점령을 예상하고 훈장을 준비했던 러시아?
행쿠
2022. 3. 2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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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크라이나의 텔레그램에 위와 같은 사진이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우크라이나인들이여! 보십시오, 이 러시스트(러시아+파시스트)들이 벌이고 있는 짓을!!! 우리의 도시를 점령한 것에 대한 훈장입니다. 이 사실을 널리 퍼뜨려 주십시오, 특히 해외로 말입니다.' 이라고 쓰여있습니다. 만약 이 훈장(이하 메달)들이 전쟁 직전에 디자인/계획 되었다면 이 것은 필시 러시아에 의해 철저하게 계산되고 계획된 침략 전쟁이라는 사실에 한 획을 긋는 또다른 증거가 될 것 입니다.
그럼 메달을 한 번 살펴볼까요.
사진의 메달은 좌측 부터 시계방향 순으로
1. 키예프(러시아어이므로 키예프[우크라어: 키이우]라 표기하겠습니다.) 점령 수훈
2. 르비브(러시아어이므로 르비브[우크라어: 리비우]라 표기하겠습니다.) 점령 수훈
3. 오데사 해방 수훈
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각설하고 먼저 한가지 말씀드리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우크라이나에 가족이 있는만큼 전쟁 초기부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대해 보다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관심 가져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최대한 사실적시 위주의 기사를 가져오려 무던히 애썼습니다. 물론 그 사이 많은 시비(?)도 붙었고 (대부분은 다른 분들이 알아서 댓글로 처리해주셨지만) '편향된' 기사를 가져온다는 오해도 샀습니다. 제가 굳이 우크라이나 편을 들고자 우크라이나 측의 기사를 가져왔을까요? 딱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크라이나보다는 러시아 쪽의 언론 통제와 페이크 확산, 소위 '주작질'이 더 심하기 때문에 미 펜타곤과 영 국방정보국에서도 인정한 비교적 신뢰도가 더 높은 우크라이나의 언론 기사를 가져온 것 뿐입니다.
아 물론 딥스테이트니 어쩌고를 믿는 분들에겐 이런 합리적인 설명조차 통하지 않겠지만 그 분들 보시라고 생업이 있는 제가 시간 할애해가면서 기사 번역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서론은 이쯤 해두고자 합니다.
아무튼 우리 모두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을겁니다. '전쟁에 있어 "선전"은 중요 요소이고, 러시아든 우크라이나든 진실만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라는 사실을요. 아마 사람들은 궁금하겠죠. '그래서 이게 진짜야? 가짜야?'
그래서 오늘은 한 번 중립적인 입장에서 팩트체크를 진행해보겠습니다.
러시아에서 유학하던 시절, 한창 크름반도 점령사태로 러시아 현지가 시끌시끌했고 루블 값은 지금보단 사정이 좀 나은 편이지만 똥값이 되었으며 같이 유학생활을 하던 서유럽 국가에서 왔던 룸메들은 '와 씨발!!! 아이폰 개똥값!!!' 이라 외치면서 일가친척들에게 송금을 받아 아이폰을 너댓개씩 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 때만 해도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가슴아픈 역사를 갖고 있고 또 약소국이자 피침략국인 우크라이나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에 사태의 심각성과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겪었을 심정 같은 것은 알 턱이 없었고 단순히 '뭐 소련시절 선물로 줬던 영토 다시 환수해가나보다~'정도로 생각 했었지만 러시아 현지의 반응은 열렬했습니다. 사람들은 씹창난 루블 환율과 나락으로 가던 생활수준 속에서도 '강건한 러시아!'라는 푸틴의 선전활동에 속아서 적잖이 뽕에 차있었고 그 당시 저랑 친하게 지내던 러시아인 친구들 역시 저를 데리고 군기념품 가게를 몇 번 같이 가곤 했습니다.
문제는 제가 거기서 이런 류의 메달을 봤다는 것이죠.
이런 메달은 '우크라이나 죽어라!!'란 취지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2014년 전에 제작되었다면 말이죠. 사실 기성세대 러시아인들의 가슴 속 깊은 곳에는(영어를 할 줄 알며, 고등교육을 받았고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목이 마른 2030은 아닌 경우가 많지만) 아직도 소련시절의 영광이 남아있습니다. 한마디로 이런 메달은 소련시절 나치독일에 항거해 당시 소련기준으로 서부전선이었던 소비에트 연방 내 우크라이나SSR의 영토를 수복한 기념메달 레플리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란 소립니다.
이런 연유로, 와이프의 고향이고 처가식구들이 지금도 하루하루 목숨걸고 버티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응원하고픈 마음은 굴뚝같지만 팩트 확인은 팩트 확인이라는 별개의 마음으로 접근하여 여러 소스를 뒤져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나마 '친러시아'or'친우크라'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키르기스스탄(물론 경제적으로 러시아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굳이 구획을 나누자면 친러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쪽의 사이트에서 동 건에 대한 팩트체크를 진행해둔 포스트가 있더군요.
<<키예프 점령 수훈>> 메달이 정말로 러시아 병사들에게 수여되었는가? - 팩트체크
이 메달은 현재 인터넷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가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계획적으로 침공하는 과정에서 3일 이내 우크라이나 전체영토를 수복할 것을 계획하고 만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간략하게 말하면 이 메달의 뒷면엔 2015란 숫자가 써있고, 실제로 러시아의 군용기념품점에서 널리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2017년부터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생각외로 잘 팔리지 않자(일부 극우주의자, 푸틴의 열렬한 신봉자를 제외한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우크라이나는 우리나라랑 별개의 국가인데 그걸 왜 점령하고... 그걸 기념하는 메달을 우리가 왜 사야해....?' 라고 생각하니 뭐 당연한 수순이겠지요.) 499루블이던 메달이 199루블로 떡락했다는 사실까지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 군용품점을 찾아보았습니다.
누가봐도 쌍팔년도스러운 디자인에 오랜만에 느껴보는 러시아 유학시절의 향수가 물큰 다가오는 사이트였습니다. 물론 역겨운 침략전쟁을 정당화라도 하듯이 '우리 군대를 응원해주세요!'라는 러시아어 문구와 대문짝만한 Z의 향연에 짜증이 치밀었지만 팩트 체크를 위해 메달을 찾아보았습니다. 빨간색으로 네모 쳐둔 곳이 보이시나요? 너무 작아서 안보이신다면 죄송합니다...
팩트체크 포스트의 말대로 2015년이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꼴랑 131개밖에 안팔렸습니다. 물론 키르기스스탄의 포스트와는 달리 전시체제에서 국뽕이 다시 차오를 것이라 느꼈는지 가격은 재차 499루블로 상향시켜둔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아마 '나치독일에게 점령당한 소련의 서부전선 도시들을 탈취한 기념'이라기 보다는 2014년 크름반도를 무단점거 한 뒤로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고, 나아가 우크라이나까지 러시아의 영토에 복속시킬 것을 앙망하며 만든 취지 자체는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메달은 맞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네요.(제 유학시절에 이런 메달을 직접 가게에 가서 봤을 때는 친구들은 '이건 세계 2차대전 당시를 기념하는 메달'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싶네요...)
결국 결론은 심플하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1. 러시아가 현재 자신들이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의 공적을 치하하기 위해 2022년에 메달을 만들었다?
A. 팩트아님
2. 러시아는 크름반도 무단점거(Annex) 이후 호시탐탐 우크라이나를 복속시키기를 희망했다?
A. 일부 민족주의자들이 그런 사상에 입각해 2015년을 기점으로 그런 메달을 만들었다고 추정되지만 이는 알 수 없음, 대다수의 젊은 러시아인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를 명백히 두 개의 독립국가로 인식
결국, 전쟁에 있어 하나의 주요한 수단으로 간주되는 선전/선동/날조는 양국 모두에서 진행중이며, 이에 따라 편향적인 정보만 보고 우크라이나가 이기고 있다, 러시아가 이기고 있다 일차원적으로 왈가왈부 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제가 이 글을 작성하는 취지입니다.
아마 이 글을 보고 제 의도를 곡해하거나, 또 보고싶은 부분만 편향적으로 취사선택해 '거 봐라 우크라이나 기사 믿을게 못된다고 하지 않았느냐!!빼애애애애애애액' 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아 미리 첨언하자면, 우크라이나 공/민영 언론들은 이 메달에 대해서 단 한 건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자국민 사망자 수도 숨기는 러시아 언론들과는 달리, 그만큼 국민들에게 사실에 입각해 증명된 사실만 전달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지금 이 '메달' 관련 내용은 텔레그램과 트위터를 위시해 인터넷 상에서만 퍼지고 있는 찌라시 수준이란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저는 계속 시간과 힘이 닿는 대로 전쟁의 참상을 적시해둔 기사를 종전 때까지 번역해 올리고자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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